“대한극장의 마지막 상영: 한국영화 황금기의 막을 내리다”
한국 영화의 중심지였던 충무로와 종로3가 일대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영화계의 상징이었다.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수많은 극장이 몰려 있었고, 이 지역은 자연스럽게 영화사와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는 중심지가 되었다. 각종 영화 포스터와 홍보물이 인쇄되던 인쇄골목은 당시 영화의 황금기를 더욱 빛냈다.
단관극장의 시대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극장은 지금과 달리 멀티플렉스 개념이 없었다. 단관극장, 즉 영화 한 편만 상영하는 극장이 일반적이었고, 국내 영화 산업은 아직 미약해 대부분 수입 영화에 의존했다. 할리우드 대작이 극장에서 상영될 때면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장면이 흔한 풍경이었다. 한정된 영화 선택지 속에서도 관객들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극장의 변화: 시대를 따라 변모하는 공간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한국 영화계의 중심이었던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대한극장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 단성사는 1904년에 국내 최초 상설 영화관으로 문을 열었지만, 108년 동안 운영된 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2005년에는 복합 상영관으로 재개관을 시도했으나 결국 부도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피카디리는 한때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끌던 극장이었지만, 결국 CGV로 간판을 바꿨다.
- 서울극장도 2021년, 멀티플렉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았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멀티플렉스의 부상이 있었다. 관객들은 더 넓은 좌석과 스타디움식 스크린, 외식과 쇼핑, 오락이 결합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한 곳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택할 수 있고, 최첨단 시설을 갖춘 이러한 영화관은 기존의 단관극장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경쟁력이었다.

대한극장: 영화 역사의 산 증인
그중에서도 대한극장은 한국 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958년 개관해 1900석 규모로 당시 국내 최대의 영화관이었던 대한극장은 미국 20세기 폭스가 설계한 대한민국 최초의 무창(無窓) 영화관이었다.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이 대한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벤허(1959년), 사운드 오브 뮤직(1969년), 킬링필드(1985년) 등으로 수많은 매진 기록을 세웠다.
특히 벤허는 대한극장을 ‘벤허 극장’으로 불리게 만들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70㎜ 필름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차 경주 장면이 화제가 되었고, 3시간이 넘는 영화를 6개월 동안 장기 상영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당시 대한극장의 인기는 영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한극장의 변화와 종말
2002년, 대한극장은 11개의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변모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이겨내기는 역부족이었다. 2023년 9월 30일, 대한극장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극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자 한국영화 황금기의 상징적인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충무로 시대의 종말
대한극장의 폐관은 한국영화의 중심이었던 충무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 한때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던 이 지역이 이제는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지역의 몰락을 넘어서,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발전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대한극장의 폐관으로 충무로는 더 이상 과거의 영화 중심지가 아니며,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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