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직장인들의 저녁 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에는 저녁 회식이 필수였고, 회식 후에도 사무실로 돌아가거나 야근 후 술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직장 내 상사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회식은 피할 수 없는 압박으로 작용했으며, 직장 근처의 식당과 주점들은 야근과 회식 수요로 늦은 시간까지 영업했다. 당시 자정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를 겨냥한 숙취 해소 음료 광고가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풍경은 1990년대 직장인들의 바쁜 일상과 그에 따른 저녁 식사 문화의 한 단면이었다.
유럽에서 처음 알게 된 ‘다른 저녁’
유럽의 저녁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퇴근 후 곧장 귀가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보내는 유럽인들의 생활은 당시 한국 직장인들에게는 매우 낯설다. 특히 오후 6~7시만 되면 유흥가를 제외한 도시는 조용해지고, 사회적 활동보다는 가정에서의 생활이 중심이 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다. 늦은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려다가, 문을 연 식당을 찾지 못해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한국에서 당연시했던 늦은 저녁 식사 문화와의 큰 차이다.
한국인의 변화하는 저녁 생활
최근 한국에서도 저녁 시간이 달라지고 있다. 한 카드사의 조사에 따르면, 5년 전보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평균 19분 앞당겨졌다. 여전히 오후 6~7시 퇴근이 가장 많지만, 오후 5~6시 퇴근 비율도 13%에서 23%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회적 움직임을 반영한다.
또한,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식당과 주점에서 저녁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사교보다는 개인적인 여가를 중시하는 경향이 늘었다. 헬스장을 찾는 직장인들이 많아졌고, 자기 계발과 건강 관리가 새로운 저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회식 문화의 변화와 식당가의 어려움
이러한 변화는 회식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2차까지 이어지는 회식이 보편적이었지만, 이제는 1차만 하고 귀가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회식이 밤 9시에 마감되는 경우가 일반화되면서 식당들은 더 이상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지 않는다. 밤 9시 이후에는 적자가 발생하는 ‘적자 타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의 시끌벅적했던 식당 분위기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고, 라스트 오더는 8시경에 이미 시작된다. 이는 코로나 이후 회식 자제 분위기의 고착, 맞벌이 가정의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근로시간의 변화와 과제
한국의 근로시간은 2011년까지만 해도 OECD에서 최장이었으나, 2022년에는 5위로 줄어들었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 정책들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중국의 근로 문화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중국은 과업이 주어지면 밤샘을 불사하며 완수하는 근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민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