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되면 나는 대지에
구멍 하나를 판다 그리고 그 안에
겨울 동안 모인 것들을 집어넣는다
종이 뭉치들, 다시 읽고 싶지 않은
페이지들, 쓸모없는 말들,
파편들, 실수들을
또한 헛간에 보관한 것들도
그 안에 넣는다
햇빛과 땅의 기운,
여정의 일부를 마친 것들을
그런 다음 하늘에게, 바람에게,
충실한 나무들에게
나의 죄를 고백한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
찬사를 갈망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곳에 모여진
몸과 마음의 쓰레기들 위로 구멍을 메운다
그 어둠을, 그 죽음 없는 대지를 닫으며
그 봉인 아래서 낡은 것이
새것으로 피어난다
- 웬델 베리 <정화> (류시화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