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에 받는 특별한 지팡이, 청려장
매년 ‘노인의 날’에 100세 이상 노인들에게 대통령 명의로 수여되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 바로 ‘청려장(靑藜杖)’ 지팡이다. 2023년에는 2623명이 청려장을 받았으며, 그 중 2073명이 여성으로, 남성보다 서너 배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팡이를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상 100세에 해당하고 지자체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수령자가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을 보면 장수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쇠지팡이보다 단단한 청려장의 독특한 매력
청려장은 잘 다듬으면 쇠지팡이 못지않은 강도를 자랑하는데, 가볍게 들 수 있는 250~300g의 무게에 불과하다. 겉모습은 옹이진 고목을 닮아 고풍스러운 멋이 있으며, 망치로 두들겨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청려장을 만드는 재료는 명아주다. 어른 키보다 훌쩍 큰 명아주를 뿌리째 뽑아 솥에서 찐 후 껍질을 벗겨 그늘에 오랫동안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사포질과 기름칠을 하고 옻칠을 하여 마무리한다. 이 정성 어린 제조 과정은 청려장의 가치와 견고함을 더욱 높여준다.
역사 속의 청려장, 그 상징과 가치
청려장은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등장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그의 작품 ‘모귀(暮歸)’에서 “내일도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구름을 바라보겠네”라고 청려장을 언급했다. 여기서 ‘려(藜)’는 명아주를 뜻한다.
또한 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은 나이를 이유로 은퇴하려 할 때 임금이 그를 만류하며 청려장을 내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연령에 따라 ‘가장(家杖)’, ‘향장(鄕杖)’, ‘국장(國杖)’, ‘조장(朝杖)’ 등으로 구분되어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70세에 이르면 나라에서 ‘국장’을 선물했고, 왕이 하사하는 ‘조장’은 여든의 지혜로운 노인에게 수여되었다.
퇴계 이황이 사용한 청려장은 경북 안동에 보관되어 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안동에서 청려장을 선물로 받은 바 있다.
청려장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
청려장은 단순히 쇠약해진 몸을 의지하라는 뜻을 넘어, 집안과 마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인생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노인들의 삶을 존중하고, 노인 스스로 자존감을 유지하며 공동체에 기여한 지혜를 인정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은 노인에 대한 공경 문화가 희박해지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높은 편이며, 정치권에서는 노인의 참정권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오가는 실정이다. 청려장의 의미가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노인 공경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