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는 문화, 수리할 권리로 환경 지키기

국제 수리의 날

국제 수리의 날은 2017년 시작된 기념일로, 매년 10월 세 번째 토요일에 열린다. 이 날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수리할 권리를 알리기 위해 열린수리연맹이 제정하였다. 전자제품을 쉽게 고치고, 고쳐 쓰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다.


수리할 권리란?

수리할 권리는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수리하거나, 제3의 수리 업체에 맡길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러 제한 요소로 인해 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체는 자사의 수리 서비스만 이용하도록 요구하거나, 제품을 수리하기 어렵게 설계하며, 수리 도구와 부품 공급을 제한하여 소비자의 수리 선택권을 제한한다.


수리할 권리의 입법화 노력

유럽연합은 2020년 순환경제행동계획을 발표하며 수리할 권리를 입법화하기 시작했다. 2023년 5월에는 ‘수리할 권리 지침(R2RD)’을 채택하여, 제3자가 수리한 제품도 제조업체가 수리 요청을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하였다.

국내에서도 2022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수리’ 개념을 도입했다. 최근 입법 예고된 시행령은 제품을 설계할 때 수리 용이성을 고려하고, 자가 수리에 필요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권고사항에 그쳐 실효성이 부족하며, 의무사항으로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계획적 진부화

계획적 노후화란, 제품의 내구성을 의도적으로 짧게 설계하는 전략을 뜻한다. 내구성이 약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제품의 수명을 단축하여 소비를 촉진시키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이 고쳐 쓰기보다는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전략은 1920년대 전구 제조업체들이 장수명 전구 대신 수명이 1천 시간으로 제한된 전구를 생산하기로 담합한 사례에서 비롯되었다.


수리의 어려움과 AS 문제

현대 소비자들이 겪는 수리의 어려움 중 하나는 짧은 보증기간이다. 많은 제품의 보증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으며, AS센터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부품이 부족하거나, 수리 비용이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져 수리를 포기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후위기와 전자제품 수리의 중요성

전자제품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사용 단계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70%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며, 사용주기를 1년만 늘려도 EU 기준으로 자동차 100만 대가 배출하는 탄소량을 절감할 수 있다.

전자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전자폐기물은 약 5360만 톤에 달했으며, 이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특히 비공식 해체장이나 재활용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환경 오염을 악화시키고, 세계보건기구는 어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경고하기도 했다.


과거의 수리 문화, 그리고 우리의 미래

과거에는 구멍 난 양말을 꿰매거나, 동네 전파사를 찾아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수리 문화는 이제 옛날 일이 되었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고쳐 쓰는 문화를 부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 수리의 날을 맞아, 버리기로 한 물건을 다시 고쳐 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환경을 지키는 작은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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