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지키기보다 자신을 지킨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발발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 간의 전쟁이 발발하며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하마스의 공습으로 인해 많은 이스라엘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군사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동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하마스에 왜 이렇게 무력하게 당했는지에 대한 원인 중 하나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목되고 있다.


네타냐후의 권력 유지와 “사법 리스크”

네타냐후 총리는 2019년 뇌물 혐의로 기소되었다. 외국 사업가에게 3억 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편의를 봐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위기는 국가적인 위험으로 확대되었다. 의회와 인사권을 적극 활용하며 방어에 나선 그는, 2020년에 면책특권 부여를 요청하고 총리직을 중도파 청백당 대표 베니 간츠와 18개월씩 번갈아가며 맡기로 한 약속을 배신했다. 이에 따라 의회 해산과 총선 재실시를 유도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청백당의 한 간부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가 ‘내가 다음 검찰총장을 임명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며 충격적인 상황을 전했다. 그의 정치적 방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네타냐후는 반(反)이슬람 성향의 울트라 극우 정당(오츠마 예후디트)과 연정 협상을 추진했으며, 그들의 대표 이타마르 벤그비르에게 안보장관직을 맡겼다. 벤그비르는 최소 8번의 유죄 판결을 받은 과격 인물로, 미국조차 그를 기피하고 있다.


도발적인 행동과 그 결과

특히 벤그비르는 올해 초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를 무턱대고 방문하여 아랍권의 거센 반발을 샀고, 하마스는 이에 대해 즉각적인 보복을 천명했다. 그 결과로 하마스는 “알아크사 홍수”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큰 피해를 입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보장관이 되어서 이스라엘의 안보에 위협이 된 셈이다.


사법 무력화와 국민 반발

이스라엘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역할을 겸하고 있지만, 네타냐후는 지난 7월 권력 비대화를 이유로 들어 대법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사법 무력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이 법안은 자신에 대한 총리 해임안이 국민 청원으로 접수되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권한 축소에 대한 국민의 반발은 거셌고,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국방장관이 이에 반발하여 사표를 제출했으며, 모사드와 신베트 같은 첩보기관 내에서도 반대 기류가 형성되었다. 결국 이 틈을 하마스가 놓치지 않고 공격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전시 비상 내각과 비난

전쟁이 발발하자 네타냐후는 전시 비상 내각을 구성했지만, 여전히 벤그비르를 내각에 남겨두려 한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 이후에도 총리직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여전히 극우 정당과의 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서 국민보다 자신의 정치적 방어와 권력 유지에 더 집착하는 모습은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다음 자리”를 생각하며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네타냐후의 행보는 비판받을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이스라엘이 직면한 안보 위협은 그를 둘러싼 정치적 계산의 결과일 뿐 아니라, 네타냐후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려는 무리한 시도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다. 이스라엘 국민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우선시한 그의 행적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하마스: 그 기원과 목표

하마스(Hamas)는 1987년에 설립된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저항 운동 조직이다. “하마스”는 아랍어로 ‘이슬람 저항 운동(Harakat al-Muqaqama al-Islamiyya)’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이 조직은 이스라엘 점령 지역의 해방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에 기반한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저항과 자살폭탄 공격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펼쳐왔다.


하마스의 창설자: 아메드 야신

하마스의 창설자는 아메드 야신(Ahmad Yasin)이다. 그는 1936년에 태어나 장애를 겪었지만, 그 후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며 저항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마스를 설립한 뒤, 1989년 이스라엘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인질교환을 통해 석방되었다. 그러나 2004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의 사망 후에도 하마스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마스의 구성과 활동

하마스는 군사조직인 ‘에즈 에딘 알 카삼(Ezz Eddin al-Qassam)’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앙지도부와 지역별 하위 정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부는 3개의 위원회로 나누어져 있으며, 하위 조직은 4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자살테러와 무력투쟁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학교와 병원을 건설해 팔레스타인 빈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속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정치적 협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들은 중동 평화 교섭 및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다양한 테러 공격에도 관여한 바 있다. 또한 이스라엘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하마스의 국제적 지원과 정책

하마스는 이란을 비롯한 여러 국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있으며,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그 이후로도 하마스는 반 이스라엘 저항운동을 계속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왔다.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에 기반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며, 팔레스타인 내에서 다양한 사회사업을 통해 지지 기반을 넓혀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의 대립: 중동을 둘러싼 양면전 가능성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헤즈볼라는 오랜 시간 동안 적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목표로 활동하는 정치·군사 조직이며, 헤즈볼라는 레바논을 기반으로 하는 시아파 무장 단체이다. 이 두 단체는 이슬람 종교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며, 이스라엘 또한 이들의 위협에 대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마스(Hamas): 팔레스타인의 저항 조직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Islamic Resistance Movement)’의 약자로, 1987년 팔레스타인 내에서 일어난 인티파다(반(反)이스라엘 봉기) 이후 설립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에 맞선 대중적 저항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하마스가 등장하게 되었다. 하마스는 이슬람 형제단에서 분리된 단체로, 종교적 가치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결합하여 이스라엘의 존재를 종교적·정치적으로 부정하며 무력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장 투쟁을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등에서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있다. 하마스는 수차례의 자살 테러와 로켓 공격, 무력 충돌을 주도하며 팔레스타인 내에서 강경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2006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입법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당시 여당이었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파타·Fatah)을 제치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후 2007년 하마스는 파타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가자 지구를 통치하게 되었다. 파타는 이 내전에서 패배하며 서안 지구로 밀려나고, 이후로도 하마스와 파타 간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최근 하마스의 지지율은 한때 하락했지만, 이스라엘과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다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이 집권하면서 비타협적인 태도로 대응하자,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하마스가 다시 강경 투쟁의 대표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헤즈볼라(Hezbollah):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세력

헤즈볼라는 ‘하나님의 당’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아파 무장 단체로,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반대하여 결성되었다. 레바논 내 시아파 공동체를 중심으로 조직된 헤즈볼라는 시리아와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무력을 강화해왔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정규군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레바논 국회에서 의석을 확보해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표로 활동하며, 이스라엘과의 군사 충돌을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헤즈볼라의 무장 활동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를 중동의 주요 불안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군사 활동 외에도 학교, 병원, 복지 시설을 운영하며, 레바논 내에서 시아파 공동체의 보호자이자 복지 제공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양면전(Two-Front War): 이스라엘의 전략적 대응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라는 두 세력과의 대립 속에서 양면전의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동시에 공격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군사적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은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마크 레게브 소장,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수석 고문이자 과거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인물은, 라이흐만대 아바 에반 연구소장으로서 이스라엘의 전략적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북부에서의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양면전을 치러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이스라엘이 두 전선에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어서 “쉽지 않은 전쟁이겠지만, 필요하다면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울 수 있으며,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동시에 공격해 올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특히 북부 지역에서의 분쟁 확대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양면전은 이스라엘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스라엘 군은 이를 감안해 전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국민보다 자신을 지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발발

최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동에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이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는 하마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큰 의문을 낳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왜 이처럼 무력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지난 수년간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과 군사적 대응력 저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권력 유지와 정치적 위기 대응 방식이 문제의 근원 중 하나로 꼽힌다.


권력 유지에 집중한 네타냐후

베냐민 네타냐후는 2019년 뇌물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외국 사업가로부터 3억 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의 권력 유지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네타냐후는 자신의 개인적 위기를 국가적 위험으로까지 발전시키며 의회와 인사권을 활용해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20년 면책특권 부여를 요청하며 연정 파트너였던 중도파 청백당의 베니 간츠 대표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두 사람은 18개월씩 총리직을 번갈아 맡기로 했지만, 네타냐후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총선 재실시를 유도했다. 이러한 정치적 계산 속에서 이스라엘은 불안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극우 정당과의 연정과 도발

네타냐후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反)이슬람 성향의 울트라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와 연정을 맺었다. 그 결과, 이타마르 벤그비르와 같은 극단적인 인물에게 안보장관직을 맡기는 결정이 내려졌다. 벤그비르는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최소 8번 받은 인물이며, 그의 행동은 미국조차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벤그비르는 올해 초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를 무턱대고 방문해 아랍권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하마스는 이에 대해 보복을 천명했다. 그 결과,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공습이 발생하며 이스라엘의 안보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사법 무력화와 국민 반발

이스라엘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자신의 권력 비대화를 이유로 대법원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사법 무력화 법안을 지난 7월 관철시켰다. 이는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에 나섰다. 또한, 국방장관이 이에 반발하며 사표를 제출하는 등 이스라엘 내부의 혼란은 커져만 갔다.

심지어 모사드와 신베트와 같은 첩보기관에서도 네타냐후의 정책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안보에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이 틈을 타 하마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습을 감행했다.


전시 비상 내각과 극우 정당의 역할

전쟁이 발발하자 네타냐후는 전시 비상 내각을 구성했지만, 국민들의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극우 정당과의 연정을 유지하며 권력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전쟁 이후에도 네타냐후는 총리직 유지를 위해 극우 정당과의 연정이 여전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는 국민의 안전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우선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행보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책 마련에 집중했으며, 이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국가적 위기 속 네타냐후의 태도

네타냐후는 끊임없이 ‘다음 자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국민 대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에 집착하고 있다.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권력 유지를 위한 선택들을 반복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네타냐후의 태도와 그의 정치적 계산이 다시금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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